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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①

  나의 중학 시절의 몇 안되는 친구 중에 가까이 지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때를 달리하여 둘 있었다. 그중 하나는, 결코 내가 그를 버린 것은 아니었으나, 그 사귐이 오래 가지 못했다. 그는 내가 또 다른 한 사람과 친구가 됐다 해서 나를 버렸다. 이 두번째 사귐은 내 생애의 한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오래 계속됐다. 나는 개혁자의 정신으로 그 우정을 맺었던 것이다.
  이 친구는 원래는 나의 형님의 친구였다. 그들은 한학급 동무였다. 나는 그의 약점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를 믿을 만한 친구로 여겼다. 어머니와 형과 내 아내는 나쁜 친구를 사귄다고 내게 경고를 해주었다. 나는 아내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기에는 너무나도 교만했다. 그러나 어머니와 큰형의 의견에는 거역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들께 이렇게 변명을 했다.  어머니와 형님이 말씀하시는 그의 결점을 잘 압니다. 그러나 어머니나 형님은 그의 좋은 점을 모르십니다. 제가 그와 사귀는 것은 그를 고쳐 주기 위한 것이므로, 그가 저를 잘못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가 자신의 생활을 고치기만 하면 그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저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설명으로 그들이 안심했으리라고는 생각치 않지만, 하여간 그들은 내 설명을 받아들이고 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후 나는 내가 잘못 판단했다는 것을 알았다. 개혁자는 그가 개혁시켜 주려는 그 사람과 친숙해질 수가 없다. 참된 우의란 혼과 혼의 하나됨인데 세상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것이다. 오직 같은 성격 사이에서만 우정은 가치있는 것이 될 수 있고 또 오래 갈 수 있다. 친구는 서로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친구 사이에는 개혁의 여지는 거의 없다. 나는 모든 배타적인 친밀은 피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란 선보다는 악을 훨씬 더 쉽게 받아들이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과 친구가 되려는 사람은 홀로 남아 있든지, 그렇지 않으면 온 세계를 제 친구로 삼든지 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 잘못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친밀한 우의를 맺어 보려던 내 노력은 실패하고 말았다.
  내가 그 친구를 처음 만났던 당시, 라지코트에는  개혁 의 풍조가 휩쓸고 있었다. 그는 내게 우리 선생들 중에 남몰래 고기와 술을 먹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 부류에 속해 있다는 라지코트에서 이름난 여러 사람 이름을 들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그 속에는 중학생도 더러 있다고 했다.
  나는 놀랍고 고통스러웠다. 내가 그 친구에게 그 까닭을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약한 민족이 됐다. 영국이 우리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고기를 먹기 때문이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얼마나 튼튼하냐, 또 얼마나 잘 뛰는 선수냐? 그것은 내가 고기를 먹기 때문이다. 고기 먹는 사람은 부스럼이나 종기가 나는 법 없고 또 혹시 난다 하여도 곧 낫는다. 우리 선생들이나, 그밖에 고기 먹는 저명 인사들이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그 효력을 알고 있다. 너도 그렇게 해야 한다. 실지로 해보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해봐, 그리고 얼마나 힘이 나는가 봐. 
  육식에 대한 이 모든 권고는 단번에 나온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내 친구가 오랫동안 두고 내 마음을 움직이려고 때때로 해왔던 정성들인 토론의 요점일 뿐이다. 내 둘째 형님은 이미 빠져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친구의 주장을 지지했다. 내 형과 이 친구의 눈에는 나는 분명 몸이 약했다. 그들은 둘 다 몸이 튼튼하고 힘이 세고 훨씬 담대하였다. 이 친구의 재주가 나를 사로잡아 버렸다. 그는 먼 거리를 굉장히 빨리 뛸 수 있었다. 그는 높이뛰기, 넓이뛰기의 선수였다. 그는 어떤 신체의 벌을 받아도 끄덕없이 견디어냈다. 그는 자주 제 재주를 내게 자랑해 보여 주었다. 사람이란 제게 없는 재주를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볼때는 언제나 현혹되는 법이라, 나는 이 친구의 재주에 현혹되었다. 그렇게 되니, 그 다음 나도 그와 같이 되자는 욕망이 강하게 일어났다. 나는 뛸 줄도 달릴 줄도 몰랐다. 그러나 나라고 그와 같이 못한다는 법이 어디 있는가?
  그뿐 아니라, 나는 겁이 많았다. 나는 늘 도둑, 유령, 뱀이 무서워서,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밤에는 감히 문밖을 나서지 못했다. 어두움이 무서워서 어두운 데서는 잘 수가 없었다. 이 구석에서는 유령이 나오고, 저 구석에서는 도둑이 나오고, 또 한곳에서는 뱀이 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방안에 불을 켜놓지 않고서는 잘 수가 없었다. 곁에서 자는 내 아내, 어린애도 아니고 이제 젊은이가 다 된 그녀에게 어떻게 무섭다는 소리를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녀가 나보다는 용기가 더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 부끄러웠다. 그녀는 뱀이나 유령에 대한 공포를 몰랐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도 어디나 갈 수 있었다. 내 친구는 나의 이런 모든 약점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보면 늘 자기 손으로 산 뱀을 쥘 수 있고, 도둑놈을 막아낼 수 있으며, 유령이란 것은 믿지도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물론 고기를 먹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구자라트 시인 나르마드의 파격시 한 구절이 당시 우리 학생들 사이에 유행됐는데 그건 이런 것이다.

  저 억센 영국인을 보라.
  조그만 인도인을 맘대로 한다.
  고기를 먹는 그는
  키가 5큐빗이더라.

  이 모든 것이 나를 그냥 두지 않았다. 나는 못견디었다. 육식이 좋다는 그것이 나를 튼튼하고 담대하게 만들 것이라는, 그리고 온 국민이 만일 육식을 한다면 저 영국인들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차차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하루는 작정을 하고 우선 그 실험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것은 아무도 모르게 할 수밖에 없었다. 간디 집안은 바이슈나바 신자들이다. 우리 부모는 특히 열렬한 바이슈나바 신자다. 그들은 빠지지 않고 하벨리에 다니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우리 가족의 신전이 따로 있기까지 했다. 구자라트에는 자이나교가 성했다. 그래서 그 영향을 어디를 가나 모든 일에서 느낄 수 있었다. 당시 구자라트의 자이나 교도와 바이슈나바 교도들 사이에서처럼 강경하게 육식을 반대하고 미워하는 것은 인도 안과 밖을 가릴 것 없이 어디가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그러한 전통 속에서 자랐다. 그리고 어버이에 대한 나의 효성은 지극했다. 나는 그들이 만일 내가 고기를 먹은 것을 안다면 그 순간 기절해 버릴 것 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나의 진리에 대한 사랑이 나로 하여금 매우 조심하도록 했다. 내가 만일 고기를 먹기 시작한다면, 부모님을 속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내가 몰랐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개혁 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맛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게는 특별히 맛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아따.
  내 소원은 강하고 담대해지는 것, 우리 동포들도 그렇게 되어서 영국을 때려부수고 인도를 자유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스와라지(Swaraj : 자치) 란 말을 나는 아직 듣지 못했었다. 그러나 자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개혁 의 열정이 내 눈을 어둡게 했다.
  비밀은 아무래도 지켜야 할 것이므로 나는 스스로, 다만 부모님 앞에서 행동을 숨기는 것은 진리에서 떠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며 자신을 설득시켰다.

 



비극 ②

  그래서 그날이 됐다. 그때의 내 심정을 완전히 그려내기는 어렵다. 한편으로는 개혁 에의 열의, 그리고 생애에서 한 중대한 새 출발을 한다는 호기심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일을 하면서 도둑질이나 하듯 숨겨야 하는 부끄러움이 있었다. 그 둘 중 어느 것이 더 지배적이었는지는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조용한 곳을 찾아 냇가로 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난생 처음 고기를 보았다. 빵집에서 구운 빵도 있었다. 내게는 어느 것도 다 맛이 없었다. 염소 고기가 가죽같이 질겼다. 도무지 먹을 수가 없었다. 진저리가 나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 밤새 혼이 났다. 무서운 가위가 나를 눌렀다. 잠이 들락말락 하노라면 곧 산 염소가 뱃속에서 음매음매 우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어 벌떡 일어나야 했다. 그러면 나는 다시 육식은 의무라고 생각을 고쳐 먹고 해서 내 마음을 안정시켰다.
  내 친구는 웬만큼 하고는 그만 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는 고기를 가지고 별별 음식을 맛있게 요리하기 시작했다. 식사할 장소는 이제 냇가의 어느 외진 곳이 아니라, 식당과 테이블과 의자가 갖추어진 주의사당이었다. 그것을 내 친구는 그곳의 요리주임과 의논하여 모두 준비해 놓았다.
  그 미끼는 효과가 있었다. 나는 싫던 빵도 좋아지고 염소에 대한 불쌍한 생각도 잊어버리고, 그리고 반드시 고기 자체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고기 요리의 맛을 알게 됐다. 그것이 한 1년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 고기 잔치는 모두 합하여 대여섯 번 밖에 못되었다. 그것은 주의사당에 그렇게 매일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비싼 고기 요리를 자주 장만하기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개혁 의 비용을 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밑천은 내 친구가 늘 장만해야 했다. 어떻게 그것을 했는지 나는 모르지만 그는 해냈다. 그는 나를 꼭 육식가로 만들자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의 수단에도 한도가 있기 때문에 그 잔치는 자연 드문드문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언제나 이 비밀 잔치를 치른 날이면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는 건 말도 안됐다. 어머니는 자연 내게 밥을 권하고 왜 안 먹느냐고 까닭을 물었다. 나는 그저  오늘은 먹고 싶지 않습니다. 소화가 좀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했지만, 그런 핑계를 꾸며 대자니 양심에 가책이 없을 수 없었다.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짓말도 어머니에 대한 거짓말이다. 또 내가 고기먹는 놈이 되어 버린 줄을 어머니나 아버지가 알게 되시는 날이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런 생각이 내 심장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고기를 먹는 것은 필요하고, 전국적으로 음식  개혁 을 일으키는 것도 필요하지만, 제 부모들을 속이는 것은 고기를 먹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생존해 계시는 동안은 육식은 말도 안되고, 그들이 안계시게 되어 맘대로 할 수 있는 때가 되면 나는 내놓고 고기를 먹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가 올때까지는 나는 육식을 하지 않겠다. 
  이 결심을 친구에게 말하고 그뒤로 나는 다시는 육식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들은 두 아들이 육식자가 된 줄은 알지도 못했다.
  나는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순결한 의욕에 육식을 끊었지만 친구와의 사귐은 끊지 않았다. 그를 개심시키자는 내 열의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 교제는 나로 하여금 아내에 대해 불신을 저지르게 하는 데까지 이를 뻔했는데,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면했다. 내 친구는 한번은 날 사창가로 끌고 갔다. 그는 내게 필요한 훈수를 해주고는 나를 들여보냈다. 모든 것을 미리 다 꾸며 놓았었다. 돈도 미리 치러져 있었다. 나는 죄의 문턱에 빠져 들었었는데, 하느님께서 그 무한한 자비로 나를 나 자신에게 건져 주셨다. 그 죄악의 굴에 들어가니 눈이 캄캄하고 귀가 막막했다. 나는 여자의 침대 곁에 앉았으나 입이 붙어버렸다. 여자는 참다못해 모욕을 주고 욕설을 퍼부으며 나더러 나가라고 했다. 나는 사내의 면목을 잃기라도 한 것 같아 부끄러워 땅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뒤로 언제나 하느님이 나를 건져 주신 것을 감사한다. 나는 내 일생 동안 그런 일이 네 번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데, 대개의 경우 내편에서 힘을 써서라기 보다는 운수가 좋아서 구원됐다. 엄정한 도덕적 견지에서 본다면 이 모든 경우는 다 도덕적 타락이라 해야 할 것이다. 정욕은 이미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행동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할 때는 몸으로 범하지 않았으면 그 사람은 구원됐다 할 것이다. 나는 다만 그런 의미에서 구원이 됐다. 어떤 행동은 그것을 피하게 된 것이 피한 그 사람에게나 그 주위의 사람에게나 천행인 때가 있다. 누구나 올바른 의식으로 돌아만 오면, 그 모면에 대해서 하느님께 감사하게 된다. 우리는 때때로 사람이 아무리 빠지지 않으려 애를 써도 유혹에 빠지는 일이 있는 동시에, 또 이따금은 자신은 그러려 하지도 않는데 하느님의 섭리가 뛰어들어서 건져 주시는 일이 있는 것을 안다. 이 모든 것은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 것일까? 사람은 어디까지가 자유이고 어디까지가 환경의 산물일까? 자유의지는 얼마만한 역할을 하며 운명은 어디서부터 무대에 나타나는 것일까? 이 모든 것은 신비요, 또 영원히 신비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하던 이야기를 계속한다면, 그런 일을 당하고도 나는 내 친구와의 사귐이 나쁘다는 데 눈을 뜨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그의 타락의 꼴이 환히 드러나서 내 눈이 확 뜨일 때까지 아직도 더 많은 쓴잔을 마셔야 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순서를 따라 나아가면서 차차 하겠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같은 시기의 일이기 때문에, 여기서 말해야겠다. 내 아내와의 불화의 원인의 하나는 두말할 것 없이 이 친구와의 사귐이다. 나는 진실하면서도 질투심 많은 남편이었는데, 내 친구는 내가 아내를 의심하도록 부채질을 했다. 나는 그 친구가 거짓말을 하려니 하는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자꾸 아내에게 폭력을 가해서 고통을 주었던 내 죄를 나는 도저히 스스로 용서할 수 없다. 아마 그런 학대는 힌두 교도의 아내만이 참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여자를 관용의 화신으로 생각하는 이유다. 하인은 억울한 의심을 받으면 그 자리를 떠나면 그만이요, 친구는 사귀기를 그만두면 그만이다. 아내는 자기 남편이 의심스러우면 가만히 있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남편이 만일 자기를 의심한다면 아내는 망하는 것이다. 어디를 갈 데가 있을까? 힌두의 아내가 법정에 가서 이혼을 요청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에게는 법률이 약이 될 수 없다. 내가 내 아내를 그러한 궁지에다 몰아넣었던 죄를 나는 잊을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
  그 혐의의 혹이 뿌리뽑힌 것은 내가 아힘사*의 뜻을 모든 면에서 이해한 다음에야 된 일이다. 그때 가서야 나는 브라마차랴*의 영광을 깨달았고, 아내는 남편의 종이 아니라 그의 짝이며, 돕는 자요, 그와 고락을 같이하는 동반자로서 남편과 꼭같이 자유로 자기 길을 택할 수 있는 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심과 혐의로 캄캄했던 날들을 생각할 때마다 내 어리석음과 잔인한 치정이 혐오스러워 가슴이 꽉 막히고, 내가 맹목적으로 내 친구를 믿었던 것을 통탄하게 된다.

* 아힘사(Ahimsa) : 비폭력이라는 뜻.
* 브라마차랴(Brahmacharya) :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행위라는 뜻. 방법적인 의미로는 자체, 특히 성기관의 제어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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